작은거인-김춘호
기본정보   이름: KATO      등록일: 2010-03-22 15:32:53     조회: 6072

라켓 하나로 아시아를 호령하다


선수시절 그는 누구보다 뜨겁게 뛰었다. 한국 최초로 아시아테니스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을 제패했고 빠른 발과 센스 있는 경기운영으로 자신보다 월등히 키가 큰 선수들을 제압해 나갔다. 1980년대 한국 한국테니스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며 아시아를 호령한 그를 중년의 테니스팬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이지만 그는 은퇴와 동시에 엘리트 출신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렸다. 이제 그는 ‘잘 나가던 누구’보다 ‘함께 늙어가는 테니스동호인’이 되고 싶어한다. 30년간 한국테니스를 이끌어온 국군체육부대 김춘호 감독. 그와 한국테니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연금대상자

중학교 2학년 여름, 유난히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김춘호는 교감선생님의 눈에 띄어 테니스 라켓을 잡았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선수로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는 김춘호에게 목표, 꿈이 생긴 것은 전주고 진학 후.
“어느날 친한 친구가 새벽 3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냐고 물었다. “서울대 가려고.” 단호한 친구의 대답은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했고 ‘그래? 그럼 나는 운동을 하니까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대회에 우승해서 테니스선수 최초로 연금대상자가 되야지!’ 하는 목표를 정하게 됐다.”
그때부터 운동에만 몰두했고 1979년, 대학교 1학년에 국가대표가 됐다. 태릉선수촌 입촌 후에도 특유의 성실과 끈기는 빛을 잃지 않았다. 새벽 4시면 불암산에 올랐고 6시부터 바로 정규훈련에 임했다.
“하루는 조그마한 여자육상선수가 새벽4시에 운동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을 봤다. 새벽에 뭐하냐고 물었더니 불암산을 뛸 거라고 했다. 같이 뛰자고 해 따라간 것이 시작이 됐고  국가대표 생활 내내 새벽 산행을 거르지 않았다. 당시 태릉선수촌장님께서는 운동량이 많은 나를 보시곤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따 와야되니까 몸 조심해야된다며 걱정스런 경고를 하시기도 했다.”


아시아에 적수가 없다

1981년 아시아테니스선수권대회. 테니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22세 청년이 ‘사고’를 쳤다. 김춘호는 결승전에서 태국의 타놈콘을 40분 만에 2-0(6-2, 6-3)으로 제압하며 한국 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음해 열린 제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도 이우룡과 조를 이룬 남자복식과 신순호와 함께 출전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 남자단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의 첫 아시안게임 테니스 금메달의 주인공 또한 김춘호였던 것이다.
아시아에 적수가 없었다. 국가대표 김춘호는 그렇게 10년간 굵직한 기록들을 남겨갔다.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그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목표를 향한 ‘투지’에 있지 않을까. 그의 ‘투지’가 빛을 발한 일화가 있었으니, 데이비스컵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이탈리아와 싸운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랭킹 36위 바라주티를 꺾은 데이비스컵에서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라주티는 워밍업 시간에 나를 무시하듯 스매싱을 연발했다. 그리고 플레이 콜과 동시에 일방적으로 나를 몰아부쳤고 15분 만에 1세트를 2-6으로 내줬다. 2세트 시작 전 (당시 국가대표팀) 최부길 감독님이 어떻게든 2게임 정도만 따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왠지 오기가 생겼고 감독님께 앰뷸런스를 불러놓으시라고 얘기했다. 죽기살기로 하겠다며.”

그의 의지에 바라주티도 놀랐는지 김춘호는 2세트를 8-6으로 힘겹게 이기고 3세트마저 가져왔다. 하지만 완전 탈진 상태였고 쉬고 다시 나왔을 땐 상대도 정신을 차린 뒤라 4세트를 다시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트에 들어갔다.
“지칠대로 지친 탓에 5세트는 오늘 하루 종일 물고 늘어지겠다는 각오 하나만 갖고 들어갔다. 그런데 바라주티도 힘들었는지 그때 다리에 쥐가 났고 어렵게 5세트를 이길 수 있었다. 5시간의 경기가 끝나고 체중을 재보니 3~4kg이 빠져 있었다.”
비록 한국은 3승을 거둔 이탈리아에게 본선진출권을 넘겨주었지만 세계랭킹 36위를 물리치며 한국테니스의 위상을 높인 김춘호에 대한 국내외 언론들의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공부하는 감독
 
김춘호 감독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이는 운동선수의 길을 허락하시며 맺은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신에게 철저하고 이는 선수관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춘호 감독은 공부하는 ‘노력파’ 감독으로 유명하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소장하고 있는 테니스레슨 관련 책과 동영상도 가득하다. 국제대회 중계라도 하면 잠시도 TV앞을 떠나지 않고 국내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과 장단점을 기록해 놓는다. 일명 그만의 ‘비밀 노트’도 수십권에 이른다. 특히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김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예전 국가대표 선수 시절 닉볼리티에리 아카데미로 전지훈련을 간 적이 있다. 그때 함께 훈련한 지미 아리아스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웨이트트레이닝 후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한참을 찾아보니 목욕탕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강도 높은 훈련 후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보통 훈련 후 모여앉아 얘기하고 쉬는 우리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 경기를 잘 하는 것만큼 훈련 후 관리도 중요함을 알았고 지도자가 된 후 항상 선수들에게 근육을 풀고 컨디션을 스스로 체크하며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김 감독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현재 부천시청 소속의 서용범, 이승훈 등 부상을 안고 입대한 많은 선수들이 지금은 부상을 극복하고 최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김춘호 감독은 18년간 상무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잠깐 머물다 다시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선수들이기에 아쉬움이 클 법도 하지만 김 감독은 잘 가르쳐 국가와 팀에 보탬에 되는 선수가 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인품’이다. 이는 바른 마음을 가진 선수는 언제든 훌륭한 선수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돼야

30년 넘게 테니스와 함께 했기에 김춘호 감독은 누구보다 한국테니스 발전을 고민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분주히 뛰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중심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나라 체제는 성적이 우선시 돼 국내대회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국내대회 상금이 작아 목표의식을 갖고 선수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투어선수를 키우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자국 내 대회가 많고 상금도 높다. 이 대회에서 실력을 쌓고 퓨처스, 챌린저 등으로 투어를 다닌다. 우리도 국내 선수를 키울 수 있는 잔치를 많이 만들고 선수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 특히 모두가 자세를 낮추고 테니스 발전을 위해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선수들도 좀 더 근성있게 목표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To be continued)


글. 강숙진 기자 / 사진. 김동훈 기자


출처 : 테니스매거진 www.tennis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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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 전두문  (22)
2011.06.17
52: KATO


4월 - 김명호회장  (1)
2011.04.19
51: KATO


KATO김영철2대회장  (4)
2010.11.08
50: KATO


김두환명예회장
2010.07.13
49: KATO


KATO김영철2대회장  (1)
2010.07.13
48: KATO


KATO목이균고문
2010.07.13
47: KATO


KATO강우철 1대회장  (1)
2010.07.13
46: KATO


3월 - 박찬원  (20)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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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김춘호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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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백승희 원장  (16)
200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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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최재주  (22)
200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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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 김재희회장  (3)
20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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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 황권익회장  (19)
2009.09.11
40: KATO


8월 - 이봉규회장  (25)
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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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환명예회장
2009.08.10
38: KATO


6월 - 김종헌회장  (21)
200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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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 송영기회장  (29)
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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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윤영권회장  (7)
2009.04.10
35: KATO


3월의 인물 - 박성민  (27)
2009.03.13
34: KATO


2월의 인물 - 오재영  (6)
2009.02.16
33: K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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