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환명예회장
기본정보   이름: KATO      등록일: 2009-08-10 10:24:23     조회: 4364

 

자질과 노력만 있다면 테니스의 미래는 희망차다!

1993년 테니스 선수로는 최초로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직을 연임한 김두환 회장. 1970년대 테니스계의 간판 스타로 맹활약한 김두환 회장은 당시 생활체육 분야는 물론 엘리트 선수 발굴 육성을 도모하며 8년간의 재임 끝에 2001년 퇴임했다. 현재도 한국아마추어테니스연합회(KATO) 명예회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테니스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매일을 고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김두환 회장을 만나 미래 테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니스 선수 시절을 말하다

초창기 테니스 선수로서 김두환 회장의 명성은 굳이 숱한 기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테니스 매니아라면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테니스를 시작한 후 6개월 만에 전국을 휩쓸고 3년만인 1962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하게 된 김두환 회장은 10여년간 세계 각지를 뒤흔들며 테니스계를 호령했다. “47년이나 흐른 이야기지만 그 때만 해도 선수층이 얇아 테니스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10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 후에는 새로운 선수 발굴에 힘쓰고 테니스계를 발전시키고픈 욕심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테니스와 함께하고 있는 김두환 회장에게 테니스는 지워버릴 수 없는 역사이고 생활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다. 김두환 회장은 테니스 인생을 “최선을 다한 생활” 이라고 표현했다. “선수로 활약한 후에는 협회장으로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경기인 가운데 최초였기 때문에 주변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고 이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질적, 양적으로 협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 그만큼 성장했다고도 자부한다. 개인적으로 테니스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후배 육성에 도모하고 싶다”고 겸손을 표현했다.
  
 
테니스의 발전을 이야기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테니스는 비인기 스포츠다. 아니 치고자하는 매니아 층만 두텁다고 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테니스는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선수전용 코트가 부족한 것은 물론 프로화도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은 운동을 시작하는 주니어들이 테니스에 비해 프로가 활성화되어 있는 축구나 야구 등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태로 번지기도 한다. 김두환 회장이 걱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점이다. “사실 테니스도 프로화가 됐어야 하는 상황이다. 프로화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의 의욕이 저조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염려해 일각에서는 프로화를 논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그동안 프로화를 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프로화에 대한 논의는 꾸준했지만 문제는 상금. 상금을 주려면 스폰서를 유치해야하는데 스폰서가 없어 매번 탁상공론에 머물렀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얼마 가지 않아 해결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김두환 회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프로화가 되면 지원을 해준다는 의지가 있어 이를 계기로 프로연맹을 하나 창설해야한다는 거론이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프로 대회가 열리게 되면 선수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선수들의 경쟁이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희망찬 소식을 안겨주었다.
 

 

 

 

 

 

 

 

 

 

 

 

 

 

 

 

 

 

 

 

 

 

 

 

 

 

 

 

 

 

 

 

 

 

 

 

 

 

 

 

 

 

 

 

 

 

 

 

 

꿈나무 육성에 힘써라

김두환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현재 이형택의 뒤를 이을 인재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테니스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린 이형택은 이미 33살이다. 운동선수로 말하자면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든 것이다. 이형택이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세계 각지에서 치고 나오는 20대 초반대의 선수들을 제압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두환 회장은 이에 “테니스가 비인기 종목이고 프로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아쉬운 속내를 비추며, “프로 농구, 프로 배구, 프로 축구 등으로 스포츠 인재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 상황이다.


현재 아시아쪽은 대만과 중국, 일본의 선수들이 100위권 안에 진입해 아시아권 테니스를 성장 시키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최고 성적은 이형택이 116위의 랭킹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밑에는 247위의 전웅선이 자리를 매우고 있다. 이형택과 전웅선 사이의 공백이 크듯 한국 테니스는 이렇게 큰 공백이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김두환 회장은 꿈나무 발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주니어 선수보다 초등학생인 꿈나무 선수들의 실력이 남다른 실정이다. 꿈나무 선수들을 잘 육성하면 앞으로 10년 후의 한국 테니스는 기대할 만하다. 소수의 인원에게 집중 투자하여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하기 위해 김두환 회장은 동호인 대회를 조성하여 꿈나무 기금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동호인 대회를 유치하여 꿈나무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하고 있다. 자질이 중요한 선수가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지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고 밝혔다.
 

엘리트 대회, 관람 인구 저변 확대가 시급

선수 스스로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응원해주는 관람인구의 확대도 현재 테니스 현실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실제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만난 한 선수는 “일본의 테니스 대회 현장을 가본 적이 있는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관람인구가 많았다. 일본 선수들이 응원에 힘입어 더 나은 기량을 발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두환 회장의 생각은 어떨까. “관람인구가 없다는 것은 테니스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김두환 회장은 “1993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동호인위원회를 만들어 동호인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각 회장단과 관계를 맺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정보를 들으며 관람인구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제대회가 열린 올림픽 경기장의 관람석 1만석의 10분의 1정도인 1천명을 유치하기도 어렵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접하게 됐다. 당시 자동차 경품까지 마련했지만 경기장은 썰렁하기만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때문에 김두환 회장이 생각한 방편은 동호회 대회와 엘리트 대회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다. “작년에 대한테니스협회에서 동호인 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는데 많은 동호인들이 참석했다. 이 대회를 보고 엘리트 대회와 동호인 대회와 함께 개최하는 방법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테니스를 치면서 엘리트 대회를 관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올바른 동호인 대회로 성장하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테니스는 엘리트 대회보다 동호인 테니스가 더욱 발달되었다. 현재 조성된 테니스 동호회는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KTFS/이하 국생체), 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KATO 등 세 개가 있는데 테니스 인구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두환 회장은 그러나 “현재의 활발한 동호인 대회를 유치하기까지 KTFS나 KATA, KATO의 노력은 무시할 수 없다.


봉사와 열정으로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간의 경쟁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동호인 대회들 각각의 룰이 모두 다른 것은 물론이고, 동호회의 일부는 다른 동호회에서 거둔 실적을 자신의 동호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동호회는 동호인을 주축으로하고 상부상조해야 한다. 서로를 베타적인 시선으로만 대한다면 테니스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귀족 스포츠를 말하다

지난날 테니스는 일명 ‘귀족 스포츠’라고 불렸다. 테니스를 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네트를 중심으로 경기를 하기 때문에 격렬한 몸 싸움이 없다는 것, 여기에 복장의 색상 및 규격의 소소한 룰 등 까다로운 조건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가 즐기는 스포츠로 인식돼 ‘귀족 스포츠’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테니스는 대중 스포츠로 발달된 상황. 부와의 관계도 적어졌고 복장도 많이 완화되었다. 김두환 회장은 “테니스가 대중화 된 점은 가히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테니스 특유의 품위가 없어졌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했다. 귀족 스포츠로의 품위는 상대방을 대할 때 가장 확연히 보이는 모습 가운데 하나다.


동호인 대회 등에서는 대부분 셀프카운트 제도를 선택하지만 셀프카운트 제도를 실시할 때에 과격한 언변이 오가는 등 점차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72년과 73년, 테니스 붐이 일기 시작해 빈 땅이 있으면 테니스 코트를 만들 정도로 테니스 분야가 활발히 발전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서로간의 예의를 지키는 매력이 없어졌다. 때문에 즐기는 사람들이 복장이나 언어 등 스스로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테니스 역사의 산 증인 김두환 회장의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마음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테니스 발전을 위해 「테니스매거진」의 탄생을 누구보다 축하했고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며, 하루 빨리 한국의 테니스가 세계적인 실력으로 성장하길 기원했다.


“나는 한국 테니스에 대해 많은 희망적인 생각을 한다. 선수가 기본적으로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는 선수도 있는 반면 선수 스스로 노력하는 선수도 많다. 하지만 노력형 선수도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되고, 자질있는 선수도 발굴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노력형 선수와 자질있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 인원에게 집중하고 투자하면 반드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장효정 기자 hyo8608@naver.com
사진 이재근 기자 bombu7@hanmail.net



출처 : 테니스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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